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메리카 원주민 (문단 편집) ==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오해 == * '''아메리카 원주민은 원래 평화롭고 목가적인 사람들이다?''' 아메리카는 유라시아, 아프리카와 같은 '''대륙'''이며, 매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서 침략, 약탈, 전쟁, 고문, 학살이 일어났으며, 대표적으로 아즈텍 제국이 있다. 마야와 잉카에서도 권력욕을 위한 암투극과 정복전쟁이 수시로 일어났으며, 마야 문명권의 [[보남팍]]에서 발견된 전쟁 벽화는 매우 잔혹해서, '''그동안 사제들이 지배하는 평화로운 국가였다는 인식을 뒤집어 버렸다.''' 비교적 평화롭다고 여겨진 북미 원주민들도 일찍이 부족 간 전쟁과 대학살, '''멸족'''이 자행된 흔적이 남아있고, [[수우]][* 이들과 적대했던 오지브웨(오지브와) 말로 '독사들', '적들'이라는 뜻이다. 그들 스스로는 '오체티 사코윈'으로, 방언에 따라 다코타, 나코타, 라코타로 불렀다.], [[이로쿼이]][* 이들과 적대했던 부족의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들 스스로는 '큰 집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호데노쇼니', '하우데노사우니', '가노쇼니', 또는 '원래 사람들'이라는 뜻의 '옹웨온웨(Ongweh'onweh)'등으로 불렀다.], [[모호크]][* 이들과 사이가 매우 나빴던 알곤퀸 부족들이 'Mohowawog', 즉 식인종이라는 설을 유럽인들에게 퍼트린 것이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그들 스스로는 부싯돌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가년게하가(Kanien'kehá:ka)'라고 불렀다.], [[코만치]][* 이들과 적대했던 유트족의 말로 '적'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그들 스스로는 '누무누(Numunuu)'라고 불렀다.] 등은 아예 적대하던 부족들이 이들을 부르던 말에서 유래되었다. 남미 원주민들도 다를 건 없어서 베네수엘라의 [[야노마모]] 족은 만성적 전시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문명화가 덜 된 미개한 야만인들이다?''' 아메리카는 다른 대륙들에 필적할 정도로 매우 오래되고 장구한 역사를 지니며,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한참 선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수학]], [[천문학]], [[토목공학]], [[의술]], [[해부학]] 등은 '''동시대 유럽보다 훨씬 발전한 수준이었는데,''' 마야 문명은 일찍이 0의 개념을 알고 있었고, 아즈텍 제국은 동시대 [[조선]]과 함께 장애인 복지가 최고 수준이었으며, '''남녀 모두 무상 의무교육을 실시한 나라'''이기도 하다[* 최초는 아닌 게, 고대 [[스파르타]]가 훨씬 먼저 시행했었다. 다만 동시대 유럽에서는 교육을 제대로 받는 여성이 극소수였으므로, 최초가 아니라도 굉장히 선진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로쿼이 연맹]]의 '평화의 법'은 [[미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으며 [[문명화된 다섯 부족|아예 유럽 이민자들의 사회와 정치구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룩한 문명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체로키]]국은 [[삼권분립]], [[세쿼이아(언어학자)|자체 문자 개발]], 자치법 제정, 경제시설 확충, 교육시설 정립 등을 통해 현대 미국 못지않을 정도로 근대문화를 누리며 발전하였다. 문명화가 덜 된 미개인 운운하는 것은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동시대 유럽에서는 이단이라며 마녀사냥을 자행하거나 장애아들을 학대하는 등 아메리카 문화권에 비해 미개하고 뒤떨어지는 짓도 거리낌없이 하고 있었다.''' *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부족 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편의상 '부족' 또는 '족'으로 표기할 뿐이지, 대부분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은 소규모 집단으로 된 부족이 아닌 여러 부족과 마을이 모인 '''연맹'''에 가까웠다. [[수우]]나 [[푸에블로]] 역시 여러 지족이 모인 연맹체였으며, [[이로쿼이]] 연맹은 5개의 대부족이 연합한 정치적, 문화적 연합이었다. 부족 연합 수준에만 머물러 있던 것도 아니라서 [[포우하탄]]처럼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도 있었고 [[미시시피 문화]]와 [[푸에블로|선대 푸에블로 문화]]는 대도시, 대규모 건축물, 신전, 포장도로 등 각종 발전된 시설을 갖춘 거대한 읍성국가였다. * '''아메리카 문명은 [[아즈텍]], [[마야]], [[잉카]] 셋 뿐이다?''' 세 문명권의 기록이 잘 되어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다른 찬란한 문명도 얼마든지 많다. 다만 기록이 부족하여 유물과 고고학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북아메리카의 [[미시시피 문화]], [[이로쿼이 연맹]], [[푸에블로|선대 푸에블로(아나사지) 문화]], 미국 남부와 멕시코 북부의 [[치치멕]], 남아메리카의 [[나스카]] 등이 있으며, 아마존 열대우림 속의 선사시대 벽화와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위의 세 문화권도 선대 문명에서 기원한 것들인데, 예를 들어 마야 문명은 선대의 [[올멕]] 문명에서, 아즈텍은 올멕, 치치멕과 여러 중앙아메리카의 군소국가 연합에서 시작되었다. 코만치족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현재의 미국 남부와 멕시코 북부의 넓은 땅을 거주, 약탈, 상업, 무역의 영토로 삼았는데, 이들의 영토는 코만치리아(Comancheria)라고 불리며 준 제국으로 성장하도 했다. * '''원주민들은 모두 벌거벗고 살았다?''' 초기 유럽인들의 기록에서부터 '이곳에는 갓난아기처럼 벌거벗고 사는 야만인들이 있다'라는 구절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봤던 사람들은 주로 카리브 제도와 남아메리카 열대우림의 원주민들이다. 카리브와 아마조나스 지역은 매우 더운 열대 기후라서 '''옷을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다.''' 남아메리카 티에라델푸에고 제도의 원주민들도 옷을 거의 입지 않았는데, 이곳의 환경이 너무 척박하여 털가죽을 만들만한 대형 동물이 없던 탓이다. '''즉 입고 싶어도 못 입은 것이다.''' 또한 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로인클로스나 성기 가리개, 허리띠 정도는 착용한다. 이들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주민 문화에서는 남녀복, 평상복, 아동복, 의식용 제례복, 전투복, 갑옷, 축제옷 등 굉장히 다양한 의복을 만들어 입었으며, 다양한 무늬와 색으로 수를 놓은 고유의 복장이 존재한다. 이들은 옷을 입지 않은 민족을 미개하다고 여겼다.[* 아즈텍의 메시카인들은 거의 나체로 살던 타라스칸인들을 보고 옷도 입지 않는 미개민족이라고 깠다. 물론 아즈텍 문명이 결성되고 타라스칸이 아즈텍의 라이벌이 되면서 이들도 누비 갑옷을 입고 전사들을 육성하는 아즈텍 못지않은 당대 최강의 국가가 되었다.] 물론 아즈텍인들은 특유의 인신공양이라는 [[인습]]이 있어서, 사람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는데 이게 멀리서 보면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보이긴 했다.[* [[해병대]] 장교 정복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해병대 장교 정복을 보면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똑같은 색이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넥타이를 매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생존권 보장 운동 및 코로나 확산 예방을 계기로 아마존의 원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외부 세계로 나오면서 옷, 의약품, 탈것, 스마트폰(!) 등의 현대 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으며,[* [[아마존의 눈물]]에 등장한 와우라족 소녀 야물루는 아예 '''한국까지 왔었다.'''] 미접촉 부족들도 부족 간 거래나 노략질 등을 통해 옷을 갖춰 입는다.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는 옷도 옷이지만 [[바디페인팅]]이 특히 발달하였다. 북극권의 [[이누이트]]들을 제외한 북아메리카 북부의 원주민부터 남쪽 티에라델푸에고의 셀크남까지 몸에 장식과 무늬를 그리는 바디페인팅 문화가 존재한다. 바디페인팅의 목적은 전통 의식과 제례를 위한 것이지만 역사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 피부 보호, [[위장크림]], 적들을 겁주기 위함, 영적 상징성[* 아마존 원주민들은 입회식 등 중요한 축제 때 재규어 무늬를 그리고 춤을 추면 재규어의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등의 목적도 있다. * '''아메리카에는 바퀴가 없었다?''' 흔히 구세계와 신세계의 발전 속도를 논할 때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로, 아메리카에는 가축으로 삼을 만한 대형 가축이 없었고, 따라서 바퀴 또한 발명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는 상용화가 되지 않은 것이지, 바퀴 자체는 알고 있었다. 마야 문명과 잉카 제국의 유물에서 '''바퀴 달린 장난감'''이 발굴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 '''아메리카에서는 금속 기술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다?''' 아메리카 대륙은 [[청동기]] 제련술만 따지면 기원전 5300년경에 만든 청동기가 발굴되고, 이는 시기로만 따지면 최초의 유럽의 청동기 흔적보다도 이른 시기이다. [[타라스칸]]은 인근의 문명 중 유일하게 청동기를 흔하게 사용했던 문명이었다. 메소아메리카에서는 7세기 쯤에 안데스의 발전한 청동기 문화가 유입되어서 귀중품들을 일부 제련한 흔적은 보인다. 다만 멕시코 지방은 청동의 재료인 구리가 당대 기술로 캐내기 어려울 정도로 깊숙히 매장되어 있어 석기, 흑요석 위주의 도구를 쓴 것이다. 또한 다른 대륙들과 달리 문화권 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고 지리 및 환경 조건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유럽인 도래 이전까지 대륙 전체에 청동기 기술이 전파되거나 철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유럽인과 교류할 때에도 철기를 직접 만들기보단 '''그냥 유럽제 철기를 수입해서 썼다.''' 이게 더 싸게 먹히기도 하고. 이와는 별개로 '''야금술은 이쪽이 훨씬 발달했다.''' 중앙아메리카와 잉카 문명권에서는 금, 은, 비취, 흑요석 등 각종 보석과 광물의 가공술이 뛰어나 이들로 다양한 의식용 제례도구와 생필품을 제작했다. 안타깝게도 스페인 정복자들이 금붙이들을 싸그리 긁어모아 녹여 금괴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남아있는 유물은 별로 없다. * '''아메리카에는 문자와 기록 수단이 없었다?''' 장구한 역사를 지닌 만큼 수많은 문자가 있었다. 북미 원주민들은 대부분 구전에 의존했기 때문에 문자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중남미 지역에서는 기초적인 형태의 [[상형문자]]부터 시작한 고유의 문자 체계를 발달시켰다. [[https://en.wikipedia.org/wiki/Mesoamerican_writing_systems|중앙아메리카의 문자]] 대표적인 것이 [[마야 문자]]. 하지만 마야 문자는 소리글자적 요소와 뜻글자적인 요소 그리고 상형문자적인 요소와 비상형문자적인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마야문자 전체를 일방적으로 상형문자 혹은 그림문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03221|#]] 기록 수단 역시 존재했다. 북미와 남미는 각종 장신구와 판화, 암벽화 등으로 기록했으며,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아마테(amate) 나무의 껍질로 만든 목피지인 [[https://en.wikipedia.org/wiki/Amate|아마틀]](amatl)로 책([[코덱스]])을 제작했다. 아마틀 목피지는 스페인 정복 이후에도 간간히 사용되다가 유럽산 종이로 대체되었다. 가장 오래된 목피지는 서기 75년까지 거슬러올라가니 꽤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종이 이전의 기록매체]] 참고. * '''아메리카에는 시장경제가 활발하지 않았다?'''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이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했을 때 그곳의 무역과 상업을 보고 매우 놀랐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테노치티틀란 시장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었다.''' 북미 원주민들도 유럽인과의 무역거래에 적극적이었으며, [[비버 전쟁|이를 두고 전쟁까지 벌어졌다.]] * '''원주민들은 항상 동맹 관계에 있었다?''' 이곳도 사람 사는 사회라서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되는 일도 있었고, 앙숙 관계의 부족도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수우]]-[[오지브웨]][* 오지브웨는 이로쿼이 연맹과도 적대관계에 있었다.], [[아즈텍 제국]]-[[틀락스칼라]], [[잉카 제국]]-카나리족, [[이로쿼이 연맹]]-[[알곤퀸]] 등이 있다. 이로쿼이 연맹은 [[미국 독립전쟁]]을 계기로 정치적인 연맹이 와해되어 구성원 부족끼리 잠깐 앙숙관계가 되기도 했다. 반면 틀락스칼라-[[콩키스타도르]], 오지브웨-[[프랑스]], [[영국]] 등 필요하다면 유럽 열강과 동맹을 맺고 적대 부족을 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으며, 무역을 독점하기도 했다. *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대부분의 원주민 공동체는 전염병과 기술력의 차이로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했지만, 유럽인과의 첫 접촉부터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 전까지 원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저항했다. 무조건 열세였던 것도 아니었다. 첫 접촉으로 많은 수가 사망한 [[타이노인|타이노]] 원주민 중에서도 스페인에게 저항한 [[아궤이바나 2세]]같은 인물이 있었고, [[에르난 코르테스]]는 군견과 군마가 있었지만 원주민 동맹이 없었다면 아즈텍 제국에게 패했을 것이며, [[슬픔의 밤|실제로 전투에서 큰 패배를 안고 후퇴했던 적도 있다.]] 이는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도 마찬가지였다. [[파타고니아]]의 [[마푸체족]]과 테우엘체족은 군마와 신식 무기를 받아들여 뛰어난 기동성과 전술로 수 차례의 전쟁에서 스페인군을 압살하고 항복과 자치를 받아내기도 했으며,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던 [[포우하탄]] 연맹은 초기 [[제임스타운]]의 정착민들을 완전히 몰아내기도 했다. 최후의 [[인디언 전쟁]]인 [[리틀 빅혼 전투]] 역시 [[수우]]-북[[샤이엔]] 연합의 전술력과[* [[타탕카 이요탕카]], [[타슝카 위트코]], [[마흐피야 루타]]라는 3대 [[명장]]이 있던 것도 한 몫 했다.] 사령관 [[조지 커스터]]의 실책으로 원주민 연합이 미국군을 완전히 몰살시키고 대승리를 거뒀다. 이 때 수우-북샤이엔 연합의 무기는 '''커스터의 미군보다 훨씬 좋았다.''' * '''현재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멸족되었다?''' 물론 [[뉴펀들랜드|베오투크족]] 등 멸족한 원주민들이 많긴 하지만 대부분의 원주민 공동체는 아직 살아있으며,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소수지만 정체성을 나름대로 잘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다. 흔히 '순혈 원주민이 멸족당했기 때문에 멸족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하나, 원주민 공동체는 '''문화적 정체성 집단'''이기 때문에 혼혈이라 하더라도 원주민의 피가 흐르고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어엿한 원주민이다.[* 멸족당한 것으로 알려진 [[타이노인]] 역시 혼혈은 남아있으며, 타이노 부흥운동 단체도 존재한다. [[필립왕 전쟁]] 당시 멸족한 것으로 알려진 왐파노아그족이나 [[피쿼트 전쟁]]에서 멸족한 것으로 알려진 피쿼트족 역시 멀쩡히 살아있는 후손들이 항의하여 멸족된 부족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하지만 거의 500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멸족과 인종청소에 가까울 정도로 학살당한 것도 모자라 철저한 문화적 약탈과 파괴로 역사와 전통, 모국어를 잃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원주민 정체성을 유지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또한 원주민 대다수가 빈곤층이며 정부 지원을 받아 간간히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 20세기 들어서부터 원주민 부흥운동과 인권운동이 활발해지며 처우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미국/스페인 정부에서는 원주민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빼앗아 강제로 영어와 기독교를 가르치고 원주민 언어를 못 쓰도록 강요하여 설문조사에 원주민이라고 답하지도 못하게 했었지만, 원주민 단체와 자치국(nations)의 격렬한 저항과 항의, 세대 교체, 원주민 인식의 개선 등으로 과거의 행위를 사죄하고 원주민 문화와 사회 발전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스스로 원주민이라고 얘기하거나 원주민 혈통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으며, 외부 세계의 시선도 좋은 편이다. * '''원주민 박해, 문화파괴는 미국 혼자 다 했다?''' 후술하겠지만 절대 아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